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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제자도 (내 안에 충만하신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
[원제] Heavenly Discipleship
저: 마이클 웰즈 / 정성묵    발행일: 2018-09-12 · 두란노   규격: 145*210  ·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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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왜’ 따르고 있는가
예수를 ‘어떻게’ 따르고 있는가


한동안 ‘제자 훈련’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여기저기서 제자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제자도에 관한 책을 읽고 훈련 과정을 이수하며 쉼 없이 달렸다. 그런데 그토록 많은 시간과 비용과 에너지를 들여 훈련받은 수많은 이들이 왜 인생의 궤도에서 이탈하는가? 예수가 참길이 아니었던 것일까? 예수를 따르는 일,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니,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제자가 되겠다고 훈련을 시작했던 걸까? 오랜 세월 전 세계 신자들을 예수의 제자로 훈련시킨 사역자 마이클 웰즈는 이 책에서, 예수로 잘 시작했으나 엉뚱한 것들로 끝맺음 하고 있는 성취 지향적 제자 훈련의 현주소를 짚어 보고, 제자도의 원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지루할 틈이 없다!
알면 알수록 새롭고, 아무리 캐내도 다함이 없는
‘충만하신 예수’와 일생을 같이하다


대부분의 제자도는 똑같은 모델을 따른다. 먼저 제자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알아낸 다음, 그것을 채워 넣으려고 애쓰기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제자도가 사람 속에 뭔가를 집어넣는 노력으로 변질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른 패러다임으로 시작한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모든 신자 안에는 충만하신 그리스도가 계시며, 이미 우리 안에 거하시는 이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이 모든 제자의 사명이다. 하늘의 제자도는 밖에 있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안에 있는 것을 원동력으로 삼아 노력한다. 이미 가진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면 그것을 잃고 말 뿐이다.

예수의 방식대로 예수를 따르는
순전한 제자도


이 책은,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자부하면서 실상은 세상 방식으로 예수를 따르고 있는 이들, 또 무분별한 제자 훈련에 지치고 상처받은 이들을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골 1:27)의 비밀과 참된 제자도로 안내한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세상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방식으로 훈련받은 제자들이다. 이 책을 통해 마음의 회복을 얻으라. 생각만 해도 숨 막히고 부담되는 제자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삶’의 자연스러움과 풍성함을 경험하라!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마이클 웰즈 (Michael Wells, 1952-2011)
1989년 ‘어바이딩 라이프 미니스트리즈 인터내셔널’(Abiding Life Ministries International)을 설립해, 낙심한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안에 계신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함으로써 그분 안에서 모든 것을 가졌음을 깨닫고 누리도록 돕는 사역에 힘썼다.
“그리스도인의 성장은 단순히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대속(그분의 생명을 우리의 생명과 맞바꾼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는 약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그분이 우리의 강함이 되신다. 예수님은 그분과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우리를 미래의 지옥뿐만 아니라 매일의 지옥에서 구하기 위해 오셨다. 내내 찾아왔지만 결국 찾지 못했던 모든 것을 우리는 그분과의 관계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 확신이 마이클 웰즈가 제자 훈련 사역을 시작하고, 전 세계를 돌며 강연하도록 이끌었다. 《영적 자기진단과 치료》, 《하나님의 임재와 기도》(이상 크리스챤서적) 등의 책을 썼으며, 2011년 10월 소천했다. 생전에 그의 부단한 열정과 헌신을 통해 성령께서 심으신 수많은 씨앗이 지금도 계속해서 열매를 맺고 있다.
캔자스 맨하탄의 캔자스주립대학(Kansas State University)에서 경영학(학사)을 공부했고, 테네시 녹스빌 존슨바이블대학(Johnson Bible College)에서 성서학을 공부했으며, 뉴멕시코 포테일스의 이스턴뉴멕시코주립대학(Eastern New Mexico State University)에서 종교학으로 석사 학위(M.A.)를, 이매뉴얼침례대학(Emmanuel Baptist University)에서 상담심리학으로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캔자스 맨하탄의 유니버시티크리스천교회(University Christian Church)에서 사역했고, ‘그레이스 펠로십 인터내셔널’(Grace Fellowship International)의 상임이사 겸 부회장을 역임했다.
www.abidinglife.com


옮긴이 정성묵
광운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2015년 문서선교협력위원회가 선정한 ‘올해의 역자상’을 수상했다. 《골리앗 끝장내기》, 《존 오트버그의 관계 훈련》, 《그래도 소망》, 《종교에 죽고 예수와 살다》, 《한계를 껴안는 결혼》, 《예수님처럼 친구가 되어 주라》, 《쉬운 예수는 없다》, 《팬인가, 제자인가》, 《팀 켈러의 왕의 십자가》,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이상 두란노) 등 다수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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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예수로 시작해 예수로 마치는 인생

Part 1. 뒤틀린 제자도가 성행하다
― 성취 지향 제자도 떠나기

_세상적인 제자도
1. ‘난 예수를 가졌지만, 여전히 뭔가 부족해’

_옛 자아와 새 생명
2. ‘난 아직도 삶이 허무한 것 같아’

_제자와 분별
3. ‘제자’에 걸맞지 않은 것들을 끊어 내다


Part 2. ‘하나님 나라 방식으로’ 돌아가다
― 생명과 진리를 누리는 제자도

_하나님과 제자
4.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인가

_믿음과 제자
5. ‘나 고치는 일’을 맡기는 것이 진짜 믿음이다

_제자도의 기본
6.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떠나야 한다


Part 3. 삶의 면면, 예수 생명이 흘러넘치다
― 매일 한 걸음 더, 끝까지 가는 제자

_고난과 제자
7. 예수 안에 있으면, 고난도 생명을 낳는다

_성경과 제자
8. 성경, 답이신 예수를 가리키다

_사람들과 제자
9. 내가 받은 ‘하나님 은혜’가 본보기다

_제자의 인생
10. 평생, 날마다 예수님을 더 배워 가라

감사의 말
책 속으로
<22-23쪽 중에서>
세상적인 제자도에서는 약하고 패배하고 무너진 사람들의 삶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은 전혀 거론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받지 못할 때도 여전히 하나님을 기다리는 열심, 누군가 자신을 비방하고 오해해도 여전히 친절하게 대하는 것,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능력 같은 건 중요한 성품으로 강조하지 않는다. 글씨로 빼곡한 노트와 지식으로 꽉 찬 머리를, 꽉 차서 넘치는 가슴보다 중시한다. 성경 지식이 성경을 기록하신 분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이 땅의 법과 이 땅에서 살아가기 위한 법을 하늘에서 내려오는 은혜보다 더 귀중히 여긴다.
이런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하나님을 얻기 위해 필요한 단계들만 자세히 알 뿐 하나님이 그들을 얻으려 행하시는 일에 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자신이 변화할 방법은 열심히 배우지만, 자신이 이미 가진 예수님의 생명을 확장하는 비결에는 관심조차 없다. 이런 제자들은 비교의 굴레에 갇힌 채 주님 안에서 자신들의 청춘을 누리지 못한다. 또한 혼과 영을 분리하지 않기 때문에 뛰어난 재능과 지성과 능력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적 능력과 동일하다고 믿는다. 느리지만 꾸준하고 자연스러운 성장을 외면한 채 어느 순간 단번에 찾아온다는 완전한 환골탈태를 꿈꾼다. 스승들은 자신의 경험과 성과를 기준으로 제자들이 하나님과 잘 동행하는지를 판단한다. 이런 율법주의적이고 세상적인 제자도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28쪽 중에서>
세상적인 제자도는 껍질만 맛보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평강이 아니라 ‘평강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하나님’을 비추어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얻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에게 말로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보여 주어야 한다. 하늘의 제자도는 껍질이 아니라 열매의 알맹이다. 소위 프로 기독교인들은 영적 문제를 놓고 서로 체스를 둔다. 그들은 서로 사귀기보다는 경쟁한다. 지식과 성과, 지위의 말을 움직여 상대방의 말을 먹고 체크메이트(외통장군)를 외쳐 댄다. 솔직히 나도 그런 체스를 두어 봤다. 하지만 진정한 기독교는 힘 있고 지적인 사람들이 무시할 만큼 단순하다. 오늘날 기독교에 필요한 것은 세상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방식으로 훈련받은 제자다. 안타깝게도 세상적인 시각이 제자도의 거의 모든 측면에 침투했다.

<53-54쪽 중에서>
빛이 없는 동굴 속에 서 있어 본 적이 있는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는 눈앞에 있는 자신의 손조차 볼 수 없다. 그런 동굴에서 태어난다고 상상해 보라. 벽이 어떻고 자신의 신발이 어떤 모양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불이 켜지면 자신의 시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 당장이라도 불을 들고 들어가 동굴을 탐험할 수 있는데, 왜 평생 빛을 찾아 동굴 속을 더듬고 다니려는가? 평생 답을 찾아 수만 가지 질문의 미로를 헤맬 수도 있고, 먼저 답을 들고 질문을 마주할 수도 있다. 신자는 ‘예수님’이라는 답을 들고 모든 질문을 다룰 수 있다.

<80-81쪽 중에서>
왜 많은 신자들이 결정을 미룰까? 큰 이유는, 시도했다가 실패할까 두려워서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할 자신이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제자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도록 부름받은 것이 아니라 성숙하도록 부름받았고, 성숙은 상대적이다. 복숭아는 씨앗에서 싹을 틔우고 나무로 자라 꽃을 거쳐 열매가 된다. 각 단계가 성숙해지면 다음 단계가 시작된다. 신자가 이런 성숙의 시각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매우 낙심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간증 집회에서 듣도 보도 못한 지혜를 접하고도 자신은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빠져 강당을 나올 수 있다. 그때부터 자신의 지혜는 하찮게 보일까 봐 절대 간증을 하지 않는다. 아직 열매가 아닌 싹인 신자는 싹으로서 살아가야 한다. 성숙한 싹은 언제나 앞으로 떨어져서 다음 단계에 더 가까워진다. 미루는 것은 뒤로 떨어지는 것이다.

<118-119쪽 중에서>
그저 가만히 앉아 하나님이 최종 결과물을 주시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하나님은 최종 결과물을 주시지 않는다. 대신 하나님은 목적지로 가는 길을 주셨다. 하나님은 먼저 진리를 주시지 않는다. 대신 진리로 가는 길을 주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절대 진리가 드러난다. 이 진리는 인간의 왜곡된 마음 사전을 통해서 보는 진리가 아니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그리스도라는 길을 따라 걷는 것에 정비례한다. 진리를 알기 위한 대가는 ‘그리스도’라는 길을 따라 걷는 것이다. 이 길을 걷는 데는 평생이 걸리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다. 이생에서 진리의 끝에 이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리스도라는 길로 가지 않고 가짜 진리에 만족하면 우리의 정신이 견디지 못하고 곧 인생무상에 빠져든다.

<140-141, 145쪽 중에서>
우리는 우리 죄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죄와 씨름해 왔지만 번번이 져서 온통 신경이 죄에 가 있다. 그 죄를 다른 사람들에게 고백하면 거부를 당할까 봐 두렵고, 원수의 비난하는 목소리가 자꾸만 귀에 거슬린다. “너는 구제불능 위선자, 죽어 마땅한 실패자야. 어리석기 그지없지. 너는 불충으로 예수 이름에 먹칠을 했어.” 물론 우리가 저지른 죄는 분명 죄다. 우리 스스로 선택해서 지은 잘못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진정한 목적을 드러내기 위해 마지못해 허용된 것이다. 이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의 실패는 정말로 헛일이 된다. …(중략)… 하나님은 우리가 실패했다고 놀라시지도 포기하시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원수에게 좌지우지당하시지도 않으며, 사랑과 인자가 끝이 없으며, 가장 부드러운 마음을 갖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짓는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고 계신다. 그리스도가 이미 모든 죄를 위해 죽으셨다. 따라서 죄는 이미 끝난 문제다. ‘죄가 드러내는 것’이 진짜 문제다. 죄는 무조건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다. 죄와 실패가 우리를 사랑 많으신 아버지의 품으로 달려가게 만든다면, 그 실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파괴적인 적이 아니다. …(중략)…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했지만 넘어졌다. 하지만 시편 116편 1절을 보면 그 실패에서 그는 성공에서는 배울 수 없는 무언가를 배웠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다윗처럼 나도 실패를 통해 하나님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당신의 실패를 헛일로 만들지 말라. 실패를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

<287-288쪽 중에서>
우주의 왕께서는 정직한 자에게 상을 주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신다. 대개 신자가 해야 할 일은 아주 간단하다. 변명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가감 없이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짜서 검은 것이 나오면 우리를 짜는 자들을 보지 말고 우리의 상태를 인정해야 한다. 사랑과 친절, 자기희생, 칭찬, 용서로 배우자와 결혼에 골인했지만 시간이 지나 배우자가 자신의 가장 깊은 욕구를 채워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서 불평과 정죄, 이기주의, 분노, 원망, 비난, 육욕으로 흐르는 부부를 자주 본다. 이럴 때 신자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육신적인 행위를 고백할 수도 있고 어떻게든 변명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변명하는 사람은 돋보기를 들고서 자신이 육신적인 반응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배우자의 잘못을 찾는다.
이런 영적 상태는 텅 빈 중심을 거세게 도는 토네이도와 같다. 토네이도는 주변에서만 모든 피해가 발생하고 중심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텅 빈 자신을 중심으로 회오리를 일으켜 자기 밖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자신은 계속해서 텅 빈 채로 남아 있다. 이런 부류에서 탈피하고 싶다면 파괴와 변명을 멈추고 자신의 진정한 상태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8)라는 진리를 경험할 것이다.

<303쪽 중에서>
포도나무의 가지치기를 할 때는 전년도에 가장 많은 열매를 맺은 가지를 잘라 낸다. 좋은 가지를 잘라 내지 않으면 해를 거듭할수록 그 가지는 점점 더 많은 양분을 빨아들이는데, 열매는 오히려 적게 낸다. 이처럼 많은 신자가 과거에 잘 통했던 방식에 안주해 있다. 그 공식을 따르면 반드시 열매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스도보다 공식을 더 믿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계속해서 전진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통했던 방식의 편안함에서 끌어내신다. 하늘의 제자는 지금까지 큰 성공을 거두었던 사역이 현재는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 해도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새로운 영역에서 그분을 믿고 전진하도록 어느 영역에서는 실패를 경험하게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위에서 나온 물을 마셨을 때 하나님이 이미 떠나셨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출 17:7). 하나님 자신보다 하나님이 해 주시는 일이 예배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럴 때는 하나님이 이동하신다. 겨울에 나무는 뿌리로 돌아가 영양분을 공급받는다. 이 원칙은 제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메마른 계절은 제자들이 뿌리, 곧 자기 안에 계신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다. 봄이 반드시 돌아오겠지만, 겨울 없이 봄은 오지 않는다.

<353쪽 중에서>
늘 떠나지만 도착하지는 않고, 늘 배우지만 완벽히 알 수는 없고, 늘 만족하면서도 불만족을 느낀다는 말이 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 많은” 무언가로 소개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이토록 흥미진진한 것이다. 항상 무언가가 더 있다. 우리가 언젠가 마침내 다다를 위대한 그리스도인의 반열 같은 것은 없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은 우리를 계속해서 성장시켜 주신다.

<355쪽 중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을 선택하라고 강요해야 할 만큼 매력 없으신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가장 매력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상황에 우리를 두신다. 예수님은 우리의 선택을 강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더 잘 이해하고 선택하도록 돕기 위해 오셨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이 구원받기를 원하시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세상을 창조하시지는 않았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각자 의지로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오기 싫다고 발버둥을 치는 사람을 그리스도의 계시로 끌고 가시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그 계시로 들어가기로 선택해야 한다. 모두에게 선택권을 주셨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은 아래를 선택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세상적인 것을 원한다. 반면, 세상과 사탄, 육신과 철저히 비교되는 하나님을 보면 지체 않고 위를 선택할 수 있다. 이 비교는 우리를 낙심시키는 것이 아니라 배우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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