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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 (독특한 방식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위로) 저: 한병수    발행일: 2017-08-31 · 영음사   규격: 127*188  ·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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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구별되는 기독교의 독특한 진리를 “역설”이라는 모티브에 담아내다.

《역설》은 저자가 여러 교회에서 전달한 설교들을 모은 책이다. 책의 제목처럼 세상의 지식과는 너무나도 확연하게 구별되는 기독교의 진리를 저자가 묵상하고 설교할 때마다 그 진리가 세상의 논리 속에서는 마치 거짓인 것처럼 모순인 것처럼 여겨져서 붙인 것이다.
오늘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현세적 안녕과 평안과 부를 추구한다. 그래서 고통보다는 평안을, 환란 보다는 형통을 신앙의 이상으로 여긴다. 그런데 저자는 평안보다는 고통이, 형통보다 환란이 진리를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말하면서 범인의 상식을 타파한다. 여기에 역설이 있다. 저자가 말하는 역설이란 우리 눈에 비친, 혹은 우리의 가치관으로 볼 때는 전도(顚倒)된 진리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래서 우리가 볼 때는 이해할 수 없지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역설적 가르침을 제시하고 바른 신앙행위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수학과 논리학과 인과율이 담아내지 못하는 인간의 삶과 인간의 보편적인 상식이나 대중들의 폭넓은 공감대나 혹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경험과는 상충되는 성경의 진리를 “역설”이라는 모티브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한병수

미국 미시건에 소재한 칼빈신학교 역사신학 분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전주대학교 기초융합교육원 교수와 교목으로 기독교 교양과 채플을 담당하고, 대학교회 담임으로 성도들을 목양하는 목회자다. 그의 관심사는 성경과 신학의 통합적인 이해, 지식과 학문의 기독교적 통합이다. 저서로는 [신학의 통일성],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서론], [기독교란 무엇인가] 외에 다수의 역서와 공저서가 있다.
추천의 글
목차
추천사 4
머리말 8
1. 위로의 하나님 15
고후 1:4-9
2. 참된 예배자 27
롬 12:1
3. 사랑의 예수 41
롬 5:8
4. 예수님은 누구신가? 65
마 16:13-18
5. 긍휼의 복 85
마 5:7
6. 베드로의 선택:하나님의 아들 103
마 14:27-33
7. 성경이 말하는 복 121
시 73:25-28
8. 여호와는 나의 목자 141
시 23:1
9. 내가 응하리라 159
호 2:21-23
10.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 179
행 21:4-14
11. 자발적인 순종 195
빌 2:5-8
12. 서로 용서하라 209
엡 4:32
13. 까닭없는 신앙 225
욥 1:9
14. 바울의 상급 239
고전 9:16-18
15. 믿음의 본질 257
히브리서 11:1-3
16. 다니엘의 경건 269
단 6:10
17. 생각의 습관 289
빌 4:6-8
18. 듣는 마음 311
왕상 3:9-13
책 속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후 1:5). 이는 예수님과 바울 사이에 이미 고난과 위로의 원리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무한한 고난을 당하셨으나 동시에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무한한 위로를 받으셨습니다. 주께서 고난 받으실 때 무한한 위로를 받으신 것처럼, 바울 자신도 큰 환난 속에서 아버지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환난을 기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과 위로가 바로 예수님의 남은 고난을 당하는 우리 모두에게 위로의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위로의 원천이신 예수님의 위로가 우리에게 넘침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당하는 환난이 동일한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p14

환난은 우리에게 자신에 대한 신뢰의 중단을 요구하고, 하나님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를 요청한다. 이처럼 환난 때문에 우리는 의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삶의 정상적인 궤도에 올라서게 된다. 하나님의 존재와 섭리를 보다 선명하게 경험하는 계기는 형통이 아니라 환난이다. 비록 사람들은 형통을 선호하나, 환난의 역설을 아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닥친 환난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는 역설의 수혜자가 된다. p22

“산 제물”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다. “산다”는 것은 “제물”이 되는 순간 소멸된다. “제물”은 죽음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즉 살아있는 것은 제물일 수 없고 제물은 살아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자신의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한다. 역설이다. 여기에서 “산 제물”은 우리 자신은 죽어야 할 제물이고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 예수는 사셔야 한다는 의미의 조합이다.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의 삶을 살려면 우리는 철저하게 부정해야 하고 주님은 철저하게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처럼 삶과 죽음, 부정과 인정이 교차하는 역설의 제물과 예배를 원하신다. p36

사람들은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에서 배 안이 배 바깥보다 더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정한 안식처는 배의 안팎과 무관하게 그리스도 예수 자신이다. 우리의 진정한 안식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어떠한 인공물도 아닌 그리스도 예수에게 있다. 삶의 파도가 높고 풍파가 강하여도 변하지 않으시는 예수님 때문에 우리의 안식은 결코 흔들림이 없다. p115

세상에서 인간의 존재감과 존엄성과 가치는 가문이나 재산이나 직업이나 직위나 업적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신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자신을 이해한다.
정체성 이해의 역설이다. 인생의 의미는 우리를 이끄는 목자가 누구냐에 의해 결정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목자처럼 이끄신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떨어져 강한 원수들에게 우겨쌈을 당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이심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의 영은 소생케 될 것이다. 상황에 얽매이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의 집에 거할 것이다. p153

용서는 역설이다. 이는 용서가 보복과 사랑의 교체이며, 죽음과 생명의 교환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에 대해 용서를 택하셨다. 그러나 막대한 대가가 요구되는 일이었다. 죄의 삯으로서 죽음의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공의로운 사망은 주님께 역사하고 자비로운 생명은 우리에게 역사하는 것이 용서였다. 용서는 정의 안에서의 사랑이며 사랑 안에서의 정의이다. 이처럼 용서는 사랑과 정의가, 생명과 죽음이 입 맞추는 하나님의 역설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역설의 용서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무한한 용서의 생수를 공급하는 샘이기를 원하신다.
이를 위하여 모든 사람들을 모든 상황 속에서 용서할 것을 명하신다. 이는 용서의 역설이 우리의 삶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p220

모든 노동에는 땅에서의 유익이 뒤따른다. 그러나 복음을 증거하는자의 역설적인 상급은 권리의 포기이고 노예적인 섬김 자체이다. p252

믿음은 역설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미래의 것을 현재로 앞당겨서 취하고 누리는 소망의 실체이기 때문에 역설이다. p 263

듣는 마음은 역설이다. 듣는 마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타인의 마음을 읽는 최고의 마음이고, 당연히 다른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 추구해야 하는 기도의 내용인데, 사람들은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그들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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