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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셋 여럿 (현대성의 문제와 삼위일체 신학의 응답)
[원제] The One, the Three and the Many: God, creation and the culture of modernity
저: 콜린 건턴 / 김의식    발행일: 2019-07-10 · IVP   규격: 152*224  ·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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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
삼위일체 신학을 토대로
인간 사회가 나아갈 길을 찾다!


“삼위일체 사상이 제시하는 바를 철저하게 파고들려면 콜린 건턴의 글, 특히 『하나 셋 여럿』 등을 보라.”
_팀 켈러 | 뉴욕 리디머 장로교회 설립목사



[책 소개]

하나와 여럿, 통일성과 다원성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대조적 관점이었다. 하나-통일성의 관점과 여럿-다원성의 관점이 “헤라클레이토스부터 하벨까지”, 즉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부터 현대와 포스트모던에 이르기까지 양극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것은 사상사의 문제일 뿐 아니라 기독교 신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콜린 건턴은 역사적으로 철학이 기독교 신학의 세계 이해 및 하나님 이해에 영향을 주었지만, 철학적 인간 이해의 기저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 개념이 있음도 밝힌다. 그리고 이 점에서 기독교 신학이 삼위일체 하나님 이해를 통해 온 인류의 자기 이해에 기여함을 보여 준다. 하나님이 삼위일체시라는 사실은 하나와 여럿, 통일성과 다원성이 더 이상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있음을 알려 주며, 뿌리 깊은 문제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1992년에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행한 뱀턴 강좌에 기초한 이 책은 20세기 후반부에 기독교 신학의 지형을 바꾼 삼위일체 신학의 르네상스를 종합하는 한편, 현대의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에 분명히 기여하면서 동시에 저자 자신만의 분명한 견해로 다시 한 번 삼위일체 하나님과 세상, 기독교 신학과 철학에 근본적 성찰을 독려한다.


[출판사 리뷰]

삼위일체 신학은 곤경에 빠진 현대 인간 사회에 어떤 방향을 제시하는가?
개인과 전체 사이의 딜레마, 그리고 삼위일체 신학의 도전

하나와 여럿의 문제, 통일성과 다원성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대조적 관점이었다. 하나와 통일성의 관점 혹은 여럿과 다원성의 관점이 “헤라클레이토스부터 하벨까지”, 소크라테스 이전부터 현대와 포스트모던에 이르기까지 양극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것은 철학사의 문제일 뿐 아니라 기독교 신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이 어떠한가에 대한 이해가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이해를 규정했기 때문이다.
철학의 영향으로 기독교 신학의 세계 이해 및 하나님 이해가 영향을 받았다면, 기독교 신학이 온 인류의 자기 이해에 기여할 수 있는 여지는 없을까? 바로 이것이 이 책을 구성하는 핵심 질문이며, 저자는 분명히 그러한 기여가 있어야 함을 역설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면, 그 하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인간 이해에 분명한 함의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성과 서구 기독교 신학의 공통 기반과 공통 문제
저자는 현대성의 개념에 대한 정의로 시작해서, 어떻게 현대성이 하나님 없이 인간과 세계에 대한 견해를 발전시켰는지 추적한다. 그러나 서구의 현대성이 부정할지라도, 서구 사상의 기저에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고가 깊이 뿌리내려 있다. 다만 서구의 세계와 인간 이해는 기독교 신학뿐 아니라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에서도 영향을 받았는데, 이 융합 자체가 기독교 신학의 역사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를테면, 현대와 포스트모던이 내세우는 독창성은 사실은 철학사의 흐름에서 이탈하지 않는 고유성을 보여 준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와 일반 사상의 문제는 기독교 신학에도 동일하게 있는 문제로 밝혀진다.
차이는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가 혹은 그 하나님의 존재를 다른 것들로 “변위” 혹은 대체하는가의 문제이며, 영원성을 내세우는가 혹은 시간성을 내세우는가의 문제이다. 하나와 여럿, 통일성과 다원성은 서로 대립될 뿐 화해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뿌리 깊은 인간 문제의 해결을 위한 기독교 신학의 기여
이 책의 두 번째 부분은 첫 번째 부분에서 밝힌 문제에 대한 기독교 신학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하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사실에서 하나와 여럿, 통일성과 다원성은 더 이상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다. 더군다나 기독교 신학은 세상을 하나님의 창조로 보는데, 이를 통해 세상이 하나님의 어떠함을 반영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
관계됨, 타자의 문제, 특수성을 배제하지 않는 보편성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화해는 그러므로 기독교 신학이 자신의 과거를 오류에서 자유롭게 하는 문제이며, 이를 통해 기독교 신학이 여전히 현대 혹은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분명한 기여가 있는 일원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단순한 종합을 넘어선 『하나 셋 여럿』의 독보적 가치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현대 사회의 문제와 기독교 신학을 연결할 뿐 아니라, 몇몇 주제에 대해서는 창조성을 드러내는 구성신학적 시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개인주의는 타자 없이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는 오해를 줄 수 있는 것으로 비판의 대상이다. 20세기 후반에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너무나 당연시 되는 ‘사회적 삼위일체론’의 문제도 밝혀진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세계 사이에 있는 분명한 차이를 인식하지 않을 때 삼위일체 교리는 삼신론의 위험에 빠진다. 삼위 하나님 사이의 교제는 ‘유비’에 의해서만 세계에 적용할 수 있으며, 이런 면에서 철학적 사고는 기독교 신학에서 정당성을 확보한다.

『하나 셋 여럿』을 읽어야 할 독자
* 삼위일체론이 단지 이론에 그치지 않고,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데 어떤 효용이 있는지 궁금한 독자
*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 철학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인간 이해를 위한 시도들을 기독교 신학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평가하기를 원하는 독자
* 오늘날 기독교 신학이 철학 논의에 참여하고 주도적으로 나름의 관점으로 기여할 수 있음을 확인하려는 독자
* 교회와 세상의 언어 사이에 있는 단절을 극복하고, 함께 읽으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길 원하는 독자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콜린 건턴

콜린 건턴(Colin E. Gunton, 1941-2003)은 영국 개혁파 신학자이자 목사로서, 런던 킹스 칼리지에서 조직신학과 기독교 교리를 가르치면서 브렌트우드 연합개혁교회(Brentwood United Reformed Church) 협동목사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고전(BA)과 신학(MA)을 공부했으며, 로버트 젠슨(Robert Jenson)의 지도로 찰스 하츠혼(Charles Hartshorne)과 칼 바르트(Karl Barth)의 신론에 대해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논문을 쓰면서 런던 킹스 칼리지에서 종교철학을 강의하기 시작했고, 계속해서 이곳에서 조직신학과 기독교 교리를 가르치면서 학장을 역임했으며, 조직신학연구소(Research Institute in Systematic Theology)를 설립해 크리스토프 슈뵈벨(Christoph Schwoebel)과 함께 이끌었다. 1992년에 옥스퍼드 대학교의 *뱀턴 강좌(Bampton Lectures), 1993년에 프린스턴 신학교의 워필드 강좌(Warfield Lectures)에서 강연했다. 1999년에는 International Journal of Systematic Theology를 존 웹스터(John Webster) 및 랄프 델 콜(Ralph Del Colle)과 함께 창간했다.
주요 저작으로는 1992년에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행한 뱀턴 강좌에 기초한 『하나 셋 여럿』, 니케아 신경의 순서에 따른 기독교 기본 교리 해설서 The Christian Faith: An Introduction to Christian Doctrine을 비롯해, 삼위일체와 창조 및 현대 사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다룬 Christ and Creation, The Triune Creator: A Historical and Systematic Study, Enlightenment and Alienation: An Essay Towards a Trinitarian Theology, 신학적 설교집 Theology Through Preaching과 Theologian as Preacher 등이 있다.

*뱀턴 강좌는 영국 성공회의 솔즈베리 참사회원이기도 했던 존 뱀턴의 유증으로 1780년 이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한 연사가 8회에 걸쳐 진행하는 공개강좌다. 이 강좌의 강연자는 옥스퍼드 대학교나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문학 석사 학위 이상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선택되며, 한 번만 강연자로 선정될 수 있다. 이 강좌에서 다루는 주제는 기독교 신앙을 공고히 하고 이단과 분열을 논박하는 것, 성경의 신적 권위, 초대교회 교부들 저작들의 권위 및 초대교회의 신앙과 실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성령의 신성,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경에 담긴 기독교 신앙의 조항들이다.


옮긴이 김의식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루이빌 신학교(MA), 한국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ThM)에서 공부한 후 성균관대학교 번역테솔대학원에서 번역학(MA)을 전공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성경, 바위, 시간』 『영혼의 리더십』(이상 IVP), 『다니고 싶은 회사 만들기』(홍성사, 공역) 등이 있다.
추천의 글
『하나 셋 여럿』에서 콜린 건턴은 삼위일체론을 모든 사고와 실재에 대한 단서로 간주하고, 삼위일체론의 공동체적 관계론을 인간과 세계의 본래적 존재됨을 이해하기 위한 형이상학적 원리로 설명한다. 저자는 하나됨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다원성과 다양성을 약화해 온 기독교 전통의 일원론적 경향을 극복하고, 개별성에 기초한 다원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공동체적 통일성의 길을 삼위일체론적 논리에 근거하여 제시한다.
_윤철호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의 핵심을 삼위일체론적 관점에서 파악하며, 현대인의 언어와 상상력에서 낯설게 된 ‘관계성’을 창조 세계를 향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에서 재발견하게 돕는다. 그런 의미에서 건턴의 기획은 신학의 일반적 정의를 넘어 특유의 언어, 상징, 통찰을 통해 현실의 곤란과 인간 존재의 어려움을 치유한다.
_김진혁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조교수

『하나 셋 여럿』에 따르면 삼위일체의 세 위격들은 참된 구별로 서로 수여하고 수용하는 타자성(페리코레시스)으로 영원히 교제 속에서 공존하는 일체(하나)로서, 고대와 현대의 전체주의적 통일성과 균일성의 원리를 해체한다. 곧 그리스도와 성령의 창조와 완성 사역으로 타자인 인간과 사물(여럿)에게 존재의 시간·공간과 자유, 진선미의 구현을 허락하는 하나님의 참된 통일성이다. 숨이 죄는 버거움을 넘어 쾌감을 만끽하게 할 이 책의 독서를 권한다.
_유해무 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은퇴교수

콜린 건턴은 현대성의 많은 문제가 하나님을 변위한 데 있다고 제안함으로써 우리의 문제를 새로운 빛으로 보게 돕는다. 신학에 관심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신학이 현대의 곤경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 셋 여럿』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_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은퇴교수 듀크 대학교 길버트 로우 명예 교수
목차
서문
서론

1부 하나님의 자리를 바꾸다
1장 헤라클레이토스부터 하벨까지: 현대의 삶과 사고에서 하나와 여럿의 문제
1. 현대성이라는 관념 | 2. 비관여로서의 현대성 | 3. 하나와 여럿 | 4. 하나님 개념 | 5. 하나님의 변위로서의 현대성 | 6. 현대 상황의 비애 | 7. 결론
2장 사라지는 타자: 현대의 삶과 사고에서 개별자의 문제
1. 현대의 삶과 사고에서 개별자의 상실 | 2. 플라톤 | 3. 서구의 이중적 사고방식 | 4. 개별성의 실천 1: 자유 | 5. 개별성의 실천 2: 미학적인 것 | 6. 변위의 양식
3장 현재를 위한 탄원: 현대의 삶과 사고에서 관계됨의 문제
1. 현대성의 현세성 | 2. 기독교의 잘못된 영원성 | 3. 현대성의 잘못된 시간성 | 4. 종말론의 변위 | 5. 영지주의의 부활
4장 근원 없는 의지: 현대의 삶과 사고에서 의미와 진리의 문제
1. 상반된 의견들 | 2. 오늘날의 프로타고라스 | 3. 문화의 파편화 | 4. 근원 없는 의지의 기원들 | 5. 현대성의 모습

2부 창조됨을 다시 생각하다
5장 보편자와 개별자: 의미와 진리의 신학을 향하여
1. 토대주의와 합리성 | 2. 초월자로서의 하나 | 3. 개방적 초월자 | 4. 삼위일체적 초월자들
6장 “그를 통하여 그리고 그 안에서…”: 관계됨의 신학을 향하여
1. 되돌아보기 | 2. 경륜 | 3. 페리코레시스 | 4. 유비적 탐색 | 5. 문제의 핵심 | 6. 기독론적 결론
7장 주는 영이다: 개별자의 신학을 향하여
1. 영의 개념 | 2. 실체성의 문제 | 3. 개별자들에 관하여 | 4. 존재의 주이며 수여자
8장 삼위일체인 주: 하나와 여럿의 신학을 향하여
1. 되돌아보기 | 2. 공동체 | 3. 사회성 | 4. 맥락 안에 있는 사회성 | 5. 결론

참고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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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그 모든 통합의 전망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세계(Christendom)의 시대는 실질적으로 사라진 기독교 복음의 특정한 차원들의 희생이라는 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것이다. 하지만 현대 세계는 기독교 세계에 반발하면서 그 세계 안에 있는 인간에 대한 동일하면서도 정반대인 왜곡들을 물려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책에서 시도하는 것은 현대성에 반발하는 것도, 그렇다고 비굴하게 현대성이 이끄는 대로 따르는 것도 아니다. 현대성은 모든 문화들처럼, 창조 세계의 완성을 위하여 성령에 의해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이 비추는 치유의 빛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현대성이 다른 문화들과 다른 것은, 현대성이 처한 곤경의 독특한 특징들이, 일부 이해할 만한 이유에서 그랬을지라도, 그러한 복음을 거부한 데서 나온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위한다면, 현대의 거부를 단순히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 거부가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기독교는 참으로 자연적 인간 지성에 거슬리지만, 기독교를 대변하는 자들 때문에 잘못된 이유에서 거슬리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책이 복음과 현대 상황을 모두 조명함으로써 둘 사이에 지속적 대화가 일어나기를 희망한다.
_“서론” 중에서

이 책에서 나의 목적은 우리 시대에 대한 신학적 평가를 내리는 것이다. 나는 신자와 비신자가 모두 공유하는 세계를 살피되,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알려진 하나님에 관한 교리가 제공하는 초점을 통해 그렇게 할 것이며, 또한 그 세계의 정체를 파악하고 명료히 밝히는 과정 중에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조명하여 이 시대에 적절한 기독교 신학에 이르는 토대를 놓고 싶다.
_1장 “헤라클레이토스부터 하벨까지” 중에서

하나와 여럿에 대한 질문은 우리를 철학과 신학의 시초로 데려간다. 이 질문이 논증에 기여하는 바는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 사이의 유명한 불일치에서 분명히 표현된다. 서양 철학의 이 두 원천의 가르침에 관한 우리의 정보는 파편적이고 종종 모호하지만, 그들은 대표적 인물들로서 우리의 관심을 끈다.…헤라클레이토스는 다원성과 운동의 철학자다. 여럿이 하나보다 우선적이며, 그것도 실질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없는 방식으로 그러하다. 파르메니데스는 정반대의 사상을 대표한다. 그에게 실재는 전적으로 불변하는데, 왜냐하면 그렇게 이성이 가르치기 때문이며, 이는 감각에 제시되는 외양들과 모순되는 것이다. 실재는 영원히 그리고 한결같이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며, 이렇게 해서 파르메니데스는 탁월하게 하나(the One)의 철학자다. 여럿(the many)은 다만 하나(the One)의 작용들로만 존재한다. …그들 이후로 모든 시대의 사상을 잇는 연속적 주제들 중 한 가지는 이 둘 사이의 다양한 변형들에서 찾아볼 수 있고, 그렇게 해서 하나와 여럿의 변증법은 많은 기본적 사유의 소재들에 대한 이후의 생각 대부분을 위해 틀을 제공했다.
_1장 “헤라클레이토스부터 하벨까지” 중에서

현대는 존재의 통일성과 의미를 위한 초점인 하나님을 변위시킨 시대다.…하나님은 더 이상 세계의 정합성과 의미를 설명하는 데 필요하지 않았으며, 그 결과로 합리성과 의미의 자리는 세계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의지가 되었다. 즉 이것들이 하나님이나 세계를 변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통일하는 의지가 불필요하게 되거나, 혹은 다양한 도덕적·이성적·과학적 이유에서 거부될 때, 사물들의 통일성의 초점은 통일하는 합리적 정신이 된다.…하나님의 변위가 여럿에게 자유와 존엄을 주지 않고 또 준 적도 없으며, 오히려 우리를 새로운 그리고 종종 의식하지 못한 형태의 노예상태에 빠트렸다는 것이다.
_1장 “헤라클레이토스부터 하벨까지” 중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 교리에 대한 논의에서 보았듯이 기독교 전통 자체는 개인주의적 방향을 취하는 경향이 있어서, 인간 개별성을 영혼이나 어떤 내향성의 소유에 두었다. 이 교리는 인간의 관계성의 한 측면인 수직적 차원을 간직했지만, 다른 측면인 수평적 차원은 간직하지 못했다.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내적 관계 안에 있다는 것이었지, 본질적으로 이웃이나 세계와 관계 안에 있다는 것은 아니었다. 인간에 대한 현대적 신념들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자유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온다는 사상은 현대인들에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아니지만, 또한 자유가 우리의 관계성의 한 함수인 상대방으로부터도 온다는 것은 거의 생각할 수 없다. 과거와 현재, 즉 고대와 현대의 연속성의 척도는 자유가 거의 예외 없이 타자로부터의 자유라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이라는 것은 자신을 ‘실현’하거나 ‘성취’하는 것, ‘우리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지, 우리의 이웃과 상호적 관계됨 안에서 우리의 존재를 찾는다는 것이 아니다. 두 시대 모두 개별성을 다룰 때 파편화와 사회적 일원론의 진퇴양난 중 어느 한 가지의 희생이 되지 않을 수 없다.
_2장 “사라지는 타자” 중에서

소수의 후대의 신학들만 이레나이우스만큼 적절하게 시간과 영원, 하나와 여럿의 통합을 이루어냈다…이레나이우스도 전통에 문제를 물려주었기 때문에 그의 작업이 이상화될 것은 아니지만, 만약 우리가 그를 경륜에 관한 유망한 설명들을 평가하는 한 척도로 사용한다면 대체로 정도에서 많이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레나이우스와 대조적으로, 일부 신학들은 구속을 희생하여 창조를 강조할 위험이나 또는 그 반대의 위험에 빠진다. 예를 들면 전형적인 서구 신학은 창조를 경시하고 구원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고, 이 점은 많은 최근의 기독론 논의에서—예를 들어, 역사적 예수 연구와 관련하여—기독론을 그것이 놓인 더 넓은 맥락에서 분리하는 사실을 설명해 준다. 이것은 중요한데, 왜냐하면 상이한 신적 경륜 개념들은 결과적으로 시간과 공간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됨을 이해하는 상이한 방식들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로 다른 강조들은 반대로, 세계 안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다양한 설명들을 제공한다
_6장 “그를 통하여 그리고 그 안에서” 중에서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위해 하나님의 경륜적 개입이 갖는 함축에 관해 물을 때 우리가 고려해야 할 가장 분명한 교부적 개념은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 개념이다. 이러한 전개가 놀랍게 보일 수도 있다. 삼위일체의 가치가 의심되어 온 현대의 삼위일체론 논의들에서, 종종 페리코레시스 개념은 이 교리가 가장 사변적이고 무익한 방식이라는 데 대한 한 사례로 보인다. 하지만 나는 정반대를 주장하고 싶다. 페리코레시스 개념은 사유를 위한 모든 종류의 가능성들을 개방한다.
_6장 “그를 통하여 그리고 그 안에서” 중에서

만약 인간들이 삼위일체의 위격들처럼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들이 창조된 점에 힘입어서 휘포스타시스들로서 구체적이고 개별적이라면, 그렇다면 그들의 개별성도 역시 그들의 존재에 중심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타자라는 점, 즉 각각 독특하고 상이하다는 점은 불행한 우연이 아니라 우리의 영광이다. 균일성을 조장하는 힘을 파괴하는 일은 사람들이 개별적이도록, 참으로 관계 안에서 개별적이도록 만드는 방법들을 발견함으로써 이룰 수 있지만, 이로써 그 관계성 자체가 독특하고 자유롭게 된다.
_7장 “주는 영이다” 중에서

우리가…검토한 두 초월자들—페리코레시스와 실체성—이 암시하는 삼위일체론적 개념은 사회성이다. 이것은 사회적 삼위일체 이론이라고 불리게 된, 거의 독립적인 세 신성들을 암시하는 것과 동일하지 않다. 분명히 이 개념은 단일한 심리의 유비에 근거한 개인주의적 삼위일체 이론들보다는 그런 이론에 더 가깝다. 하지만 이 개념의 핵심은 공유된 존재에 있다. 위격들은 단지 서로와의 관계들 속으로 들어갈 뿐 아니라, 관계들 안에 있는 서로에 의해 구성된다. 영원히 성부·성자·성령은 서로 주고받음에 힘입어 존재한다. 존재와 관계는 사유에서 구별될 수 있지만, 존재론적으로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존재와 관계는 오히려 한 존재론적 역동의 일부다. 일반적 요점은, 존 지지울라스의 말을 사용하자면, 하나님의 존재가 단조로운 통일체가 아니라 친교 안에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우스의 표현을 각색해서 말하자면,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생각하면 반드시 세 위격들로 이끌려지고, 셋을 생각하면 공유된 관계적인 존재 개념으로 어쩔 수 없이 유도된다.
_8장 “삼위일체인 주” 중에서

…우리가 찾고 있는 초월성의 본질은 무엇인가?…우리는 사회성이 콜리지적 의미에서 관념의 위상을 가진다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 사회성은 인격적 존재들의 특징적 성격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필수적인 개념이지만, 모든 것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인격적 존재들은 사회적 존재들이므로, 하나님과 사람은 그들의 인격적 관계됨 안에서, 즉 그들의 자유로운 타자성-안에-있는-관계 안에서 그들의 존재를 갖는다고 말해야만 한다. 창조 세계의 나머지는 그렇지 않은데, 그것들은 인격적인 것의 표지들 중 일부인 사랑과 자유를 갖지 못한다. 전체로서의 우주에 관해 우리는 그것이 사회성보다는 관계성을 특징으로 한다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 모든 것은 여럿의 그리고 다양한 관계의 형태들에 의해 구성되는 개별자가 됨으로써 존재한다. 그러므로 관계성은 초월자로서, 우리로 하여금 모든 창조된 인간들과 사물들이 하나님—하나님 자신이 그 본질적 그리고 가장 내적 존재에서 관계 안에 있는 존재다—에게서 나오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을 표지로 갖는다고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배울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다른 두 초월자인 페리코레시스와 실체성에 관한 논의로부터 얻은 통찰들을 통합할 수 있게 한다.
_8장 “삼위일체인 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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