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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할인+5%적립+무료배송] 예수 오실 때까지 - 조선에 묻힌 선교사들 저: 김수진    발행일: 2007-03-15 · 도서출판 진흥   규격: 152*210  ·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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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선에 헌신하였으니 죽어도 조선에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 - 캠벨 선교사
“나의 유골이나마 조선에 묻어 달라.” - 벙커 선교사
“만일 내게 천의 생명이 있다 해도 그 모두를 조선에 바치리라.” - 켄드릭 선교사
“내가 죽어도 서러워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오늘 나는 한국에서 하나님께로 가는 것을 무한한 기쁨으로 압니다.” - 마리 위더슨 선교사

죽는 순간까지 조선의 구원을 간절히 사모했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고국을 뒤로하고 사망의 그늘 아래 있는 조선에 도착했다.
남편과 아내를 잃고, 자식을 잃고, 자신을 잃으면서까지 이 땅의 영혼 바로 우리를 사랑한 선교사들.
이제는 그토록 사랑하던 조선에 묻혀 고요히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예수 오실 때까지 나는 이 믿음의 길을 가겠소.”

그러나 이 땅의 구원을 위해 헌신한 선교사들의 삶은 너무나도 잊혀져 있었다.
한국 기독교 성장의 밀알이 된 이들의 삶은 어디서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양화진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를 모르는 기독교인이 태반이다.
천주교 성지인 절두산에 비해 양화진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양화진을 찾아도 이름만 달랑 적힌 묘비만으로는
선교사들의 삶을 알 길이 없다.
물론 초라한 양화진, 전국 방방곡곡에 들꽃처럼 퍼져있는 그들의 묘는 십자가의 길을 겸허히 걸었던 그들의
삶을 닮은 것 같아 고개가 숙여지기도 하지만, 한편 그만큼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이들은 잊혀진 존재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조선 사람들 즉 우리를 향한 사랑,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지금의 한국 기독교가 위기에 직면했다고 본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평양대부흥100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조선(한국)에 뼈를 묻은 선교사들의 삶을 정리해 보았다. 기존의
책들이 양화진에 묻힌 선교사들에 대해서만 소개했다면『예수 오실 때까지』는 양화진에 묻힌 모든
선교사들뿐만 아니라 각 지방에 묻혀 있는 선교사들까지 소개하고 있다. 선교사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설명
하기에는 지면이 턱없이 부족해 각각의 선교사들의 삶을 간략하고 객관적으로 기술했다.
그러나 행과 행 사이에서 읽혀지는 선교사들의 삶은 충분한 감동 도전을 준다.
또한 각 선교사들의 사진과 묘비 사진을 실어 양화진이나 그 밖의 선교사 묘를 순례할 때 유용하도록 구성하였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이제 조선에 묻힌 선교사들의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한국 교회가 서머나 교회처럼 첫 사랑을 회복하게 되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저자 및 역자 소개
김수진 목사

전남 신안 태생으로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과(Th.B.)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 및 대학원 신학박사 전기과정(Th.M.)을 이수했다.
저서로는『한국 기독교 선구자 이수정』,『아름다운 빈손 한경직』,
『고목에 샘물이 흐르고』, 『목포 기독교 100년사』등 36권의 책을 집필했으며,
또한 공저 5권, 역서 4권도 집필했다.
현재 김수진 목사는 한국교회원로사학자로 교계와 대학 강당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며
매년 1~2권의 책을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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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 속으로
클라크 선교사 하면 잘 모르지만 곽안련(C. A. Clark), 또는 곽안전(A. D. Clark) 선교사 하면 아는 사람들이 많다. 곽안련은 곽안전의 부친이다. 찰스 A. 클라크(곽안련)는 두 자녀를 양화진에 묻어야 하는 사무치는 슬픔을 평생 동안 마음에 지니고 살아야 했다. 그래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조선 선교에 큰 기여를 하였다. 곽안련은 1878년 미국 미네수타주에서 출생하였다. 일찍이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던 그는 메카레스터대학과 맥코믹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1902년 9월 22일 부인 크라프(M. Craft) 함께 내한하였다. 이미 선교기지를 확보하고 목회를 하고 있던 무어(S. F. Moore, 모삼열)를 도와 곤당골교회에서 사역하면서 어학 훈련을 받았다.
그는 곤당골교회에서 무어를 도와 사역하던 1903년 4월 3일에 첫 아들 버튼 W. 클라크(B. W. Clark)를 낳았다. 선교지인 조선에서 첫 아들을 얻게 된 이들 부부는 여간 기뻐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을 받으면서 잘 자라던 장남 버튼 W. 클라크가 그만 홍역으로 손한번 써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충격이 컸지만 부부는 모든 것을 주님의 뜻으로 여기고 무어의 인도로 양화진에 아들의 시신을 묻고 다시 목회 현장으로 돌아왔다.
이 때 곤당골교회가 둘로 나뉘어 광교 근방에서 홍문삿골교회가 출발하게 되지만 얼마 후 이내 합쳐져 시내 인사동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1905년에 승동교회로 새로이 신축될 때 곽안련은 직접 감독을 하였다.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1905년 4월 6일에 둘째 아들인 고든 N. 클라크(G. N. Clark)가 태어났다.
모두들 기뻐하였지만 누구보다도 교회가 완공되어가는 시점에서 아들을 얻게 된 곽안련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둘째 아들조차 그해 10월 29일 소화기 질환으로 그만 사망하고 말았다.
그들은 양화진에 안장되어 있는 첫째 아들의 옆자리에 둘째 아들의 시신을 묻고 다시 승동교회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낙심하지 않고 승동교회 모든 교인들을 자신의 자녀로 여기고 열심히 일하여 인사동에 우뚝 솟은 교회를 완공하였다.
_ P. 6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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