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능력, 구원 그 이후 하나님의 사람,
교회 공동체의 역동성을 말하는 사도행전 강해!”
• 세움북스의 <모두를 위한 설교 시리즈> 열한 번째 책
• 따뜻하면서도 예리하게 교회의 본질을 향한 사려 깊은 통찰
•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논리성, 현장성이 돋보이는 설교
• 49회 설교, 부록으로 카셀아름다운교회 부임·고별 설교 수록
[출판사 책 소개]
본서는 2002년부터 2021년까지 유학생으로 구성된 독일 카셀의 한인 교회에서 담임 목회를 하며 설교했던 홍성훈 목사의 사도행전 강해 설교집이다. 저자는 동상이몽과 동병상련의 특징이 있는 유학생 성도들의 여러 신앙적 질문을 받으면서 ‘교회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함께 묵상할 필요를 느꼈다. 그리고 이 사도행전 설교를 통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카셀아름다운교회에 구현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따뜻하면서도 예리하게 교회의 본질을 향한 사려 깊은 통찰로써 복음의 능력, 구원 그 이후 하나님의 사람, 교회 공동체의 역동성을 말하는 사도행전을 설교했다. 그래서 본서는 문장에 군더더기가 없고, 논리성이 탁월하고, 시의적절한 예화가 있어 현장성 돋보인다. 저자는 성경 본문에 대한 자연스러운 신앙적 질문들을 솔직담백하게 드러내어, 독자로 하여금 단순한 이해를 넘어 생각하게 만든다. 생명력이 넘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 원한다면 이 책을 읽어 보라.
[서문]
마가복음 강해집 『하늘의 음성 땅의 고백』이 출간된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 사도행전 강해집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이 강해집의 시초는 필자가 시무하던 (독일) 카셀아름다운교회에서 2006년 9월 17일부터 2008년 8월 1일까지 주일 예배 시간에 행한 설교들이다.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렀으니 이 원고들의 수준이나 내용에 큰 진보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시절의 원고에서 크게 손질을 하지 않았다. 우선은 그때의 설교에 우리 교회의 역사가 서려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설교는 그 자체로 완성된 신학적 체계가 아니다.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서 어느 누군가에게 행해지는 것이 설교라고 한다면, 설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성’이다. 같은 설교자가 같은 본문을 전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듣는 청중이 누구이고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매번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아주 직접적이고 특정적이어서 삭제하거나 독자를 고려하여 수정한 몇 곳을 빼고는 기존의 원고 그대로를 책으로 내는 내 나름의 이유다.
사도행전 강해는 필자가 3년 동안 네덜란드와 독일을 오가며 교회를 섬기다가 가까스로 비자를 받고 이주한 후에 시작되었다. 2006년에 노동 비자를 받는 조건으로 이수하게 된 독일어 공부와 자격 시험을 준비하느라 매주 닷새 동안 학원을 오가고 있었다. 쉽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그보다는 학위 과정에서 윤리학을 전공하기 위한 책 외에는 모두를 한국에 두고 온 터라 설교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찾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교회는 전부가 유학생으로 구성되었고, 당시 교인 대부분은 1970년대에 출생한 서른 살 정도의 청년들이었다. 짐작하겠지만, 그들은 한국에서의 교회 생활을 통해서 교회와 신앙에 관하여 알기는 해도 체계적인 훈련을 좀 더 필요로 하는 교인이었다. 필자가 부임한 지 몇 달이 지나 내년에 교회를 섬길 집사를 세우겠다고 광고하고 네 페이지에 달하는 서약서를 보내자, “집사가 뭐 하는 직분이에요?”라며 한국의 부모나 친지들에게 전화를 한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이러니, 정서나 의지는 기꺼이 신자와 교인임에도 신앙의 구체적인 내용을 자상히 알지 못한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가 가장 우선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바가 있었다. 그것은 “어차피 여기에 죽을 때까지 살 사람은 없다. 그러니, 기회 있는 대로 신나게 신앙생활 하다가 형편이 어쩔 수 없으면 교회 문 닫고 떠나자”였다. 실제로 필자는 연말마다 제직 수련회를 가지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때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림은 성경에 등장하는 신앙의 선배들이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곳을 따라다니면서 발걸음이 멈추는 곳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던 바로 그 이미지였다.
이런 이미지는 필자가 부임한 이후 공개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우리 교회의 이름은 그냥 놔두실 건가요?” “교회 표어는 안 고치시나요?” “우리 교회는 목사님이 속한 교단을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요?” 같은 여러 질문을 받으면서, 교회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함께 묵상할 필요를 느끼게 했다. 그리고 그 묵상의 텍스트로 ‘사도행전’을 택한 것이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수많은 유·무명의 신자들이 그러했듯, 가는 곳마다 예배하며 복음을 증거하자는 것이었다. 예수를 주로 영접한 그들은 자의로 혹은 타의로 고향을 떠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곳으로 갔으며, 거기서 하나님께 예배하며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을 전했다. 하나님의 구체적인 목적을 인지하지 못했음에도 초대 교회 시대의 신자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움직였다. 그들은 때로 핍박을 통해 흩어지기도 했고, 개인적인 사유 때문에 먼 곳까지 이동하기도 했다. 그 이유야 어떻든, 그들은 가서 머무는 곳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고, 복음을 전하면서 자신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렸다.
이런 모습이 오늘날이라고 다르겠는가. 우리의 경험 안에서야, 교회는 건물을 중심으로 고정된 공동체이지만, 오늘날에도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건물 중심의 고정된 공동체를 누리지 못한다. 어쩌면, 우리가 요즘 흔하게 말하는 디아스포라 공동체도 여기에 속할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가 사도행전 연속 설교를 통해서 강조하려는 것은 교회 공동체의 역동성, 즉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자녀와 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들의 기본적인 특성이었다.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필자는 사도행전의 세세한 신학적 의미를 설명하기보다, 각자가 처한 환경 안에서 성령의 인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들의 즉각적인 반응성을 나의 청중들도 갖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이러저러한 곡절 끝에 카셀아름다운교회는 2021년 2월 28일, 마침내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문을 닫게 되었다.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요, 목회는 그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라고 한다. 그러니 교회와 목회가 중단된들 무슨 미련이 남겠는가.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하다. 사역자는 교회를 마치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며 여기에 생명을 걸고 일한다. 교회 역시 교인에게 있어서 그러하다. 사람은 자기 것이라 여겨야 최선을 다한다는 그 본성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용하시는 것이다. 그러니, 미련 역시 남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주께서 이런 마음을 위로해 주시길 기도할 뿐이다. 그리고 그동안에 미련하고 우매하여 주인의 뜻을 잘 헤아리지 못하고 일했던 부분이 있으면 회개하여 용서함을 받고자 한다.
사도행전 설교를 하면서 그분의 뜻을 헤아렸던 나의 메시지가 과연 그분의 마음에 드셨을지, 그의 뜻에 부합했을지, 이것이 과연 카셀아름다운교회의 역사에 제대로 구현이 되었을지를 이제 차분히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리고 한 지역 교회의 짧은 역사와 함께 선포된 사도행전의 가르침이 과연 다른 지역 교회에 어떤 교훈을 줄지 그 반향을 조용히 기다린다. 만약 거기에 긍정이 있다면, 나의 슬픔과 아픔에 그 어떤 것보다 깊은 위로가 주어질 것이다. (중략)
마지막으로, 이 설교가 전해지던 그 시간에 함께 해준 교우들께 감사드린다. 가장 좋은 훈련과 경험을 해야 했던 시절, 부족함이 많았던 목회자와 함께하느라 얼마나 고생했을지…. 다시 한번 심심한 사과와 함께, 내게 남은 시간 그대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나의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갚고자 한다. 또 하나의 개인적인 소원이 있다면, 이 책이, 나의 사랑하는 아내와 딸의 쉽지 않았던 인생이 결코 의미 없지는 않았음을 그들에게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알려 주면 정말 좋겠다. 부디 이 책이 당신의 자녀들을 이끌며 앞서가시는 하나님을 따라 미지의 세계로 항해하는 독자들에게 큰 용기를 주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