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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들의 진실 (이 시대를 잠식한 영적 기만 파헤치기)
[원제] Live No Lies
저: 존 마크 코머 / 정성묵    발행일: 2022-05-18 · 두란노   규격: 140*206  · 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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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서 들리는 뉴스들에 불안한가
시대정신과 복음 사이에서 피곤한가
모순되고 혼란한 사회에 회의를 느끼는가

가짜뉴스 전쟁, 영적 전쟁 길잡이


우리는 지금 ‘거짓들’과 전쟁 중이다. 거짓말을 듣고 말하는 것도 문제지만, 진짜 문제는 우리가 ‘거짓말에 따라 산다는 것’이다. 온몸으로 받아들인 거짓들이 우리의 정서적 건강과 영적 안녕을 질식시키고 불안의 불씨를 키운다. 싸울지 말지는 우리가 선택할 영역이 아니다. 선택지는 하나다. 승리하든지, 항복하든지. 미국의 주목받는 차세대 사역자, 존 마크 코머가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 등등 이 시대의 쉴 새 없는 기만의 집중포화 속에서 어떻게 ‘진리’로 자유로워질 것인지를 탐구한다.

숨 쉬듯 거짓을 먹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영’과 ‘진리’에서 멀어지는 마음들


옛 신자들이 이 고되고 오랜 전쟁의 패러다임을 밝혀냈다. 바로 우리 영혼을 무너뜨리려는 세 적 ‘마귀, 육체, 세상’과 벌이는 영적 싸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세대는 ‘마귀’를 고릿적 신화쯤으로 치부하며 코웃음을 친다. 육욕적인 방종을 악이 아닌 미덕으로 여기며 ‘육체’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세상’에 관한 신약의 개념을 이해할 틀이 현대인에게는 거의 없다.

더욱 세속화되고 교활해진 영혼의 적,
‘마귀, 육체, 세상’을 해부하다!

우리가 속고 있는 것들에 관하여


이 책은 믿음의 선진들이 켜켜이 쌓아 온 지식과 전술을 ‘현대 세상의 적’과의 싸움에 적용한다. 존 마크 코머는 탁월한 문화적 통찰력, 신학적 지식, 영적 깊이를 가지고 ‘문화 분석’을 ‘영성 형성’과 결합한다. 영적 성숙의 여정에서 거짓이 하는 역할을 규명하고, 성경적 전략을 제시해 우리에게 맞서 싸울 힘을 길러 준다. 매일같이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전쟁이 느껴지는가? 진리 안에 우뚝 서라. 이제 이기는 싸움을 하라!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존 마크 코머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있는 브리지타운교회(Bridgetown Church) 설립 목사. 그의 메시지들은 주로 ‘탈기독교 시대의 영성 형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대인을 못살게 구는 ‘만성적 바쁨’의 문제를 다룬 그의 책 《슬로우 영성》(두란노)은 출간 즉시 아마존에서 ‘기독교 신앙’ 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외에도 다른 네 권의 저서가 있다.
최근 그는 탈기독교 시대 정황에서 각 개인과 공동체 안에 ‘예수님을 닮아 가는 제자 훈련’이 일어나도록 자원을 제공하는 ‘프랙티싱더웨이’(Practicing the Way)라는 비영리단체를 세웠다. “디지털 시대에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경험할 수 있을까?” “정서적 건강과 영적 성숙을 보기 힘든 이 시대 문화 속에서 어떻게 예수님을 닮아 갈 수 있을까?”
아침마다 그를 잠자리에서 일으켜 세우는 질문들이다. 이에 대한 답을 찾고자 그는 성경을 깊이 파고들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꾸준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 웨스턴신학교(Western Seminary)에서 ‘성경과 신학 연구’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사랑하는 아내 T와 세 자녀 주드, 모지즈, 선데이와 함께 포틀랜드에서 살고 있다.
저자 홈페이지 johnmarkcomer.com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johnmarkcomer

옮긴이 정성묵
광운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2015년 문서선교협력위원회가 선정한 ‘올해의 역자상’을 수상했다. 《내 모습 이대로 기도합니다》, 《한 번에 한 사람》, 《천로역정》, 《팬인가, 제자인가》, 《팀 켈러의 왕의 십자가》,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등 다수의 역서가 있다.
추천의 글
내가 기다려 온 책이며, 예수님의 제자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메시지다. 고전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_크리스틴 케인 A21 창립자

존 마크 코머는 교회에 크나큰 선물이다. 그의 글에서는 탁월한 문화적 통찰력, 신학적 지식, 영적 깊이가 엿보인다. 이 책에서 그는 복잡한 옛 주제를 지금 세대에 맞게 탁월하게 풀어냈다. 수많은 문장에 밑줄을 그어 가며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보석 같은 책이다.
_리치 빌로다스 뉴라이프펠로십교회(New Life Fellowship) 담임목사

영혼이 고갈되고 너덜해진 느낌이라면 서둘러 이 책을 펴서 읽으라. 탁월하고 깊이 있고 성경적이다. 적을 맞아 싸울 힘을 길러 주는 책이다.
_제니 앨런 《당신의 머릿속에서 나오라》 저자, 이프:개더링(IF:Gathering) 설립자

존 마크 코머는 옛 지혜를 현대의 질문들에 적용하고 복잡한 개념들을 쉽게 풀어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키는 보기 드문 능력을 가졌다. 흔히 가장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여행이라고 하는데, 이 책은 그런 통념을 보기 좋게 깨뜨린다. 이 안에 담긴 명쾌한 통찰이 계속해서 당신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다.
_피트 그레이그 24-7프레이어인터내셔널(24-7 Prayer International) 설립자

모순과 혼란이 가득한 것처럼 느껴지는 시대에 존 마크 코머는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진리이며 진리를 아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 명쾌하게 설명한다. 시의적절한 책이다.
_애니 F. 다운스 That Sounds Fun(재미있게 들린다) 저자

존 마크 코머는 이 시대의 난제들을 솔직하고 지혜롭게 통찰력 있게 풀어내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_니키 검블 홀리트리티니브롬튼교회(Holy Trinity Brompton) 목사

이 책의 글자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읽고 깊은 감동을 받고 회복을 경험했다. 우리의 평안을 공격하는 세 적,곧 세상과 육체와 마귀를 존 마크 코머 특유의 사려 깊은 방식으로 파헤친 책이다. 논리적이면서도 영혼을 울린다. 이 내용들을 읽고 나면 훨씬 더 나은 모습이 될 것이다.
_브라이언 로리츠 Insider Outsider(인사이더 아웃사이더) 저자

우리가 예수님의 도에 충성하지 못하도록 매일같이 훼방하는 온갖 유혹을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 존 마크 코머는 거짓의 문화 속에서 예수님의 아름다우심에 관한 비전을 설득력 넘치게 제시한다.
_존 타이슨 뉴욕시티교회(Church of the City New York) 목사

오래전 빌라도가 던진 “진리가 무엇이냐”(요 18:38)라는 질문의 새로운 메아리들로 들끓는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의 제자의 길을 걷는 이들을 위한 매우 중요하고 시의적절한 책이다. 이 책은 현대 시대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영성을 형성하고 영성의 기형적 변형을 감지하기 위한 강력한 심리학적 · 철학적 · 신학적 틀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감히 반박할 수 없는 설득력으로 성경적 자유의 중요성을 보여 준다.
_브룩 리거트우드 송라이터, 힐송워십(Hillsong Worship) 리더

코머는 우리가 단순한 생존을 넘어 번성하기 위해 맡아야 할 적극적인 역할을 알 수 있도록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자주 곡해하는 복잡한 이야기를 간단명료하게 풀어 준다. 우리 시대에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
_게이브 라이언스 큐아이디어스(Q Ideas) 회장

이 책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광범위한 차원에서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거짓이라는 영적 적들을 밝혀 준다. 모두가 자신의 ‘진리’대로 살려고 하는 세상에서 이 책은 너무 흔해져서 일상의 대화와 결정 가운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많은 거짓말을 폭로하고 그 문제점을 지적한다.
_앨버트 테이트 펠로십교회(Fellowship Church) 담임목사

존 마크 코머의 대단한 점은 언제나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단단히 하나로 묶는다는 것이다. 우리 문화는 예수님(혹은 그분에 관한 세상의 관념들)은 좋아하지만 그분의 말씀은 좋아하지 않는다. 존 마크 코머와 같은 이들을 보면 교회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 솟구친다.
_네이든 피노치오 데오스유(TheosU) 설립자

존 마크 코머는 내 신앙 여정에 개인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그는 우리 시대 탁월한 선생 중 한 명이다. 이 책을 읽으면 마음이 강해지고 눈이 열려 개인적인 평강을 공격하는 매일의 전쟁을 보게 될 것이다.
_리치 윌커슨 주니어 보우스교회(VOUS Church) 목사

기만이 짙은 안개처럼 땅에 깔린 시대에 이 책은 안개를 환하게 걷어 내 우리가 어떻게 속아 왔고 어떻게 스스로를 속이고 있으며 어떻게 속이는 자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지 보게 해 준다. 안개가 걷히면 그리스도의 밝은 빛이 좁지만 참된 길을 밝혀 준다. 이 영적 전쟁의 시대에 분별력을 키워 주는 꼭 필요한 안내서다.
_마크 세이어스 호주 레드교회(Red Church) 담임목사
목차
‘거짓말’에 맞서는 전장 한복판에서
프롤로그. ‘디지털 바벨론’에서 살아가는 나그네들에게

Part 1. 마귀에 관하여
# ‘기만적인 개념’을 퍼뜨리는 ‘거짓의 아비’

‘생각’을 장악하려는 마귀의 술책, 기만
흐릿한 ‘정신 지도’를 들고 현실을 헤매다
교활한 가짜뉴스, ‘행복의 욕구’를 공격하다
‘말씀과 기도’로 진리의 신경 경로 뚫기

Part 2. 육체에 관하여
# 우리 모두 안에 있는 ‘망가진 욕구’

‘가장 강한 욕구’를 ‘가장 깊은 욕구’라 착각하다
‘자유’를 빙자한 ‘욕망’의 족쇄를 차다
한 번에 한 알씩 ‘영생’을 위한 씨를 뿌리라
‘금식과 죄 고백’으로 성령께 나를 열기

Part 3. 세상에 관하여
# 죄로 물들어 ‘정상’(正常)이 왜곡된 기형 사회

자아가 ‘권위’로, 트렌드가 ‘참’으로 등극하다
탈기독교 시대, 예수와 함께 ‘창조적 소수’로 살기

에필로그. 자기만족 시대, ‘자기 부인’의 위력
부록. 마귀와의 싸움을 위한 핸드북

감사의 말
책 속으로
<49쪽>
마귀의 목적은 사랑을 파괴하는 것이다. 마귀의 목적은 한 번에 하나의 관계씩, 한 공동체씩, 한 국가씩, 한 세대씩 파괴하는 것이다. 그래서 매일 뉴스만 틀면 혼란과 학살의 소식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악에 관한 세속 이론들이 인간의 극악한 행동을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우리에게 전쟁처럼 느껴질 때가 많은 것이다.
실제로 전쟁 맞다. 마귀의 방해 때문에 하나님 나라로 매일 전진하는 것은 쉽지 않다(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마귀의 지배 아래에 있는 다른 영적 존재들이 우리 길을 막고 있다). 우리는 이런 방해를 매일 느낀다. 우리는 사랑과 정욕, 정직과 체면 차리기, 절제와 방탕 같은 상반된 욕구들 사이에서 끊임없는 내적 충돌에 시달린다. 오늘날은 수많은 문화적 엘리트들이 신앙을 버리고 떠난 세속 시대다. 과학주의가 새로운 미신이 되었다. 철학자 제임스 K. A. 스미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은 우리 모두가 도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신앙을 지키고자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이다. 사회는 중심을 잃고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 싸움을 피할 길은 없다.

<91-92쪽 중에서>
마귀는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들 수 없다. 우리가 그 행동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마귀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도록 우리를 속여야 한다. 그 길이 행복으로 이어진다고 우리가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그가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착각’이다. 모든 시험의 특징 중 하나는 거짓을 믿게 유혹하는 것이다. 현실에 관해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영혼과 사회를 파멸로 몰아가기 위한 마귀의 주된 술책은 망가진 욕구에 작용하는 기만적인 개념들을 퍼뜨려 그 욕구들이 죄로 물든 사회에서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만드는 것이다.

<132-133쪽 중에서>
현실 속에서 살려면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우리 안에 들어오는 것들을 가지치기해야 한다. 우리는 몸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는 극도로 조심한다. 길가에서 아무 쓰레기나 집어서 입에 넣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도 매우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마음을 예수님의 현실과 정신 지도로 향하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만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 가장 깊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 시인 메리 올리버는 “관심이 헌신의 시작이다”라는 말을 했다. 하나님께 헌신하고 그분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한 출발점은 심플하게 그분의 영과 진리로 우리의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매일, 매주 하나님께 관심을 집중하는 것. 그분을 생각하는 것. 그분에 관해 깊이 생각하는 것. 그분을 제대로 아는 것. ……(중략)…… 우리는 이미 하루 종일 온갖 정보로 마음을 채우고 있으며, 그 정보 가운데 상당수는 우리 마음을 분열과 불안, 혼란, 분노로 몰아간다. 우리의 관심을 예수님께로 돌려 그분의 생각이 우리 마음속으로 흘러들게 하면 그분의 평강, 모든 사람을 향한 그분의 사랑과 긍휼, 그분의 깊고도 전염성 강한 기쁨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점점 더 차분해지고 사랑이 많아지며 행복해진다. 그저 그분 안에 거하기만 하면 그렇게 된다. 그러기 위한 열쇠는 그분의 습관들을 실천하는 것이다.

<156-157쪽 중에서>
이제 자아가 새로운 신이요, 새로운 영적 권위자이며, 새로운 도덕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아에게 견디기 힘든 중압감을 지운다. 자아는 이 무게를 견뎌 내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 자신이 되어야 한다. 자신에게 충실해야 한다. 자신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자신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 성과를 내서 자신의 연약한 정체성을 보호해야 한다.” 이것이 얼마나 큰 부담인지 모른다. 내 헬스 트레이너는 늘 “당신의 위대함을 증명하세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위대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수많은 날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중압감은 말 그대로 우리의 뼈를 녹인다. 현대 세상에 탈진과 불안감을 비롯해 정신적 질환이 만연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중략)…… 욕구가 신성불가침인 세계관에서 ‘궁극적인 죄’는 자신의 마음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또 다른 신학자 코넬리우스 플랜팅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문화에서 …… 자아는 훈련되거나 억제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탐구되고 만족되고 표현되기 위해 존재한다.”
이 개념은 지독히 치명적이다. 그것은 우리가 이 개념을 참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의심하는 것조차 일종의 문화적 이단이다. 남들의 자아에 대해 의심을 제기하는 것도 중범죄다. 하지만 이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자신에게 충실하라”는 주문은 매우 흥미로운 물음을 낳는다. “어떤 자아를 말하는 것인가?”

<224-225쪽 중에서>
금식의 첫 번째 효과는 주로 우리가 어느 부분에서 속박되어 있는지 밝혀 주는 것이다. 금식은 우리의 몸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도록’ 하는 훈련이다. 이 훈련을 통해 우리의 몸은 원하는 것을 항상 얻을 수는 없다는 점을 배운다. 이것이 감정과 욕구로 움직이는 세상 문화 속에서 금식이 심지어 기독교인들에게도 이상한 개념일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원하는 것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우리가 생각하는 ‘원하는 것’은 대개 우리의 육체가 원하는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금식은 우리의 몸이 원하는 것(음식)을 주지 않기로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가 원하는 것을 누군가(혹은 인생의 환경이나 심지어 하나님)가 주지 않아도 흥분하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 인생이 우리 뜻대로 되지 않아도 행복과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훈련이 된다. 이것이 제대로 된 금식은 중세의 자학적 형태와 달리 자유로 가는 길인 이유다. 금식은 고난을 행하는 것이다. 금식은 우리의 몸에 고난받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고난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금식을 통해 우리는 이 고난을 기쁨으로 감내하는 법을 배운다.

<283쪽 중에서>
모든 것은 ‘기만적인 개념’ 즉 우리가 현실에 관해 믿는 거짓말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예수님이 아닌 마귀에게서 오고, 생명이 아닌 죽음으로 이어지는 정신 지도다. 기만적인 개념이 통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망가진 욕구’ 즉 육체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 적들의 악순환을 완성한다. 우리의 망가진 욕구는 ‘죄로 물든 사회에서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죄로 물든 사회는 육체의 메아리들을 만들어 내는 반향실 역할을 한다. 죄로 물든 사회 안에서 우리는 서로(서로의 육체)가 원하는 것을 말하고 인정해 주는 피드백 고리를 형성한다.

<294-296쪽 중에서>
예수님이야말로 남은 자의 궁극적인 본보기이시다. 그분의 시각은 주류 문화에 반대하는 소수 의견이었다. 그분은 타협과 죄로 얼룩진 현재 상태를 뒤흔드는 위협인 동시에 변두리에서 사회 전체에 대한 치유와 쇄신을 촉발하는 촉매제이셨다. 그분은 삶과 가르침, 고난, 핍박, 죽음, (주님이요 왕으로서 아버지의 우편에 앉기 위한) 부활을 통해 말 그대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셨다. 그분으로 인해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세상의 역사가 바뀌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질문은 이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남은 자가 될 것인가?”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세상의 반대와 공격이 이렇게까지 심해진 것을 처음 경험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는 전에도 나그네들이었다. 교회는 그 와중에도 번성했다. 그 와중에도 교회는 정체성을 잃지 않고 오히려 새롭게 발견했다. 교회는 잠들지 않고 깨어났다. 이것은 수만 가지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311-313쪽 중에서>
그분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그분의 정신 지도가 우리가 찾는 생명으로 가는 정확하고도 참된 길잡이라고 믿어야 한다. 왜 마귀는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을 공략하는가? 에덴동산에서의 하와에서 오늘날의 당신과 나에 이르기까지, 마귀의 가장 맹렬한 공격 부위는 바로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확신이다. 예수님을 믿는 깊은 믿음이 없으면 절대 십자가를 지지 않고, 그렇게 되면 그분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자신의 욕구를 십자가에 못 박기를 거부하는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이 깊은 내면의 저항은 무엇인가? 그것은 꼭 우리가 악하기 때문은 아니다. 심지어 자기애 때문만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두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무언가, 행복한 삶에 꼭 필요해 보이는 무언가를 잃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내 직관이나 느낌보다 예수님의 정신 지도를 진정으로 믿기 전까지는, 하나님이 내 기쁨을 원하시는 사랑 많고 지혜로운 아버지이시라는 사실을 진정으로 믿기 전까지는, 나를 죽일 수 없다. 자아의 욕구들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양상이 계속된다. 이 욕구들에 대해 승리를 거두려면 마음을 철저히 예수님께 드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짚고 넘어가면, 예수님은 우리를 믿음으로 살라고 부르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이미 믿음으로 살고 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우리를 그토록 갈망하는 삶으로 이끌어 줄 거라고 믿고 있다. 우리는 정치인이나 교수, 과학자, 하위문화, 이념, 혹은 단순히 자신의 욕구를 따른다. 따라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내가 믿음으로 살고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누구 혹은 무엇을 믿는가?’다. 예수님은 ‘그분을’ 믿는 삶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심지어 그 삶이 죽음을 의미한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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