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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 위에서 (폴 틸리히 자전적 사상 탐구) 저: 폴 틸리히 / 김흥규    발행일: 2018-03-09 · 동연   규격: 128*188(양장)  ·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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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틸리히의 자전적 사상서를 내면서…

20세기 3대 조직신학자의 한 명으로 꼽히는 폴 틸리히. 그는 혼란과 방황 한가운데 숱한 시련을 당하면서 도 따뜻한 인간미를 잃지 않은 휴머니스트로서, 행동하는 지식인, 독창적 사상가로서 그의 삶을 통해 신학의 발전에 족적을 남겼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틸리히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나 존 스미스가 말한 대로 “당신은 틸리히를 찬성하면서 사유할 수도 있고, 반대하면서 사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틸리히 없이는 사유할 수 없다”(You can think with him or against him, but not without him)라는 것을 그의 저서를 한 번이라도 접한 사람이면 이해하게 된다. 틸리히는 그의 삶에서 어떤 사상이 우러나와 발전해왔는지 설명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경계선 개념이 그의 지성 발전의 전 과정을 설명하는데 안성맞춤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사유의 근간이 되어 온 경계선 위에 서는 일을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살펴봄으로써 틸리히의 사유에 한걸음 더 가까이 가보자.


경계선 신학자 폴 틸리히

틸리히의 사유와 삶은 그가 즐겨 쓴 상징 개념 ‘경계선’으로 요약될 수 있다. 양극단 어느 한쪽으로 빠져들지 않고 양쪽의 긴장을 다 살리며 견제와 균형을 이루려는 쉽지 않은 노력을 그는 일생 동안 중단하지 않았다. 이것과 저것, 신학교와 교회, 머리와 가슴, 이성과 계시, 철학과 신학, 관념주의와 현실주의, 아테네와 예루살렘, 존재와 비존재, 무한자와 유한자, 본질과 실존,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삶과 죽음, 가톨릭(보편성) 실체와 개신교 원리, 신앙과 의심, 유럽과 미국, 틸리히는 이 양쪽을 다 붙들려고 했다. 양극단의 긴장을 변증법적으로 넘어서 궁극적으로 통합하려는 시도는 틸리히가 채택한 상관방법론(method of correlation)으로 나타났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폴 틸리히
20세기를 대표하는 독창적인 신학자요 철학자. 독일에서 태어나 베를린대학, 튀빙엔대학, 할레대학에서 수학했으며, 브레슬라우대학에서 셸링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루터교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은 뒤 군목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쟁의 추악성을 목격했으며, 그 결과 독특한 실존주의 신학체계를 발전시켰고, 사회 불의와 경제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해 종교사회주의 운동에도 뛰어들었다. 독일 마르부르크대학, 라이프치히대학에서 가르쳤는데,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나치 정권에 저항하다가 비유대인으로서 는 최초의 해직 교수가 되었다. 그 후 뉴욕 유니언신학대학의 교수로 청빙되어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하버드대학과 시카고대학에서 철학과 신학 및 종교학을 가르치며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주요 저서로 『조직신학』, 『프로테스탄트 시대』, 『존재의 용기』 등이 있고, 설교집 『흔들리는 터전』 『새로
운 존재』 『영원한 현재』 등이 있다.


옮긴이 김흥규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했고, 미국 텍사스 주 남감리교대학교(Southern Methodist University)에서 조직신학으로 Ph.D.를 취득했다. 현재 인천 내리교회 담임목사로 섬기며, 연세대학교 국제 캠퍼스에서 ‘기독교의 이해’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로마서 강해 1: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2017), 『개혁 지도자 느헤미야』(2014), 『욥기서 강해: 귀로 듣다가 눈으로 뵈오니』(2007) 등과 옮긴 책으로 『신학연구 어떻게 할 것인가』(2013) 『일상목회와 신학적 성찰』(2012) 『기독교인은 전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등이 있다.
추천의 글
틸리히는 셸링, 하이데거, 니체 등에게서 배운 철학 개념과 성서를 연결합니다. 어느 쪽도 포기하지 않는 경계선에 서 있습니다. 어느 한 쪽을 거부한 채 다른 한 쪽으로 쏠리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이 세상, 철학, 정치, 문화 등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는 자신이 속한 전통, 경험, 사상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떤 경우 든지 간에 양자는 반드시 연결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틸리히의 ‘상관관계 방법론’이 남긴 중요한 유산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사에서부터 시작하되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복음으로 연결하는 틸리히의 방법론은 복음 없이 사회적 관심사만 말하는 그룹이나, 사회와 관계없이 고립되어 복음을 말하는 그룹 둘 다에게 소중한 교훈을 줍니다.
_임성모 목사 (감리교신학대학교) <붙임글> 중에서
목차
폴 틸리히 연보(年譜)
옮긴이 해제_ 틸리히, 그는 누구인가?
머리글
두 기질 사이에서
도시와 시골 사이에서
사회 계층 사이에서
현실과 상상 사이에서
이론과 실제 사이에서
타율과 자율 사이에서
신학과 철학 사이에서
교회와 사회 사이에서
종교와 문화 사이에서
루터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관념론과 마르크스주의 사이에서
본국과 타국 사이에서
회고: 경계와 한계

미주
<붙임 글>
경계선 신학자 폴 틸리히┃임성모
책 속으로
『종교실현』 서문에서 저는 “경계선이야말로 지식을 습득하기에 최적지”라고 주장했습니다. 제 삶에서 어떤 사상이 우러나와 발전해왔는지 설명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저는 경계선 개념이 제 지성 발전의 전과정을 설명하는데 안성맞춤의 상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인생의 거의 모든 지점마다 두 가지 가능성 중 에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두 가지 모두에 완전히 만족할 수도 없었고, 한쪽을 위해서 다른 한쪽을 강경하게 반대하지도 못했습니다. 사유를 하려면 새로운 가능성을 기꺼이 수용해야만 하기에, 경계선 위에 설 때 사고하기에 유리합니다. 그러나 경계선 위에 서는 일이 실제로는 고달프고 위험한데, 그것은 우리 삶이 끝없이 결단을 내려야하고 다른 선택 가능성을 배제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제 운명과 제 일은 경계선 위에 서려는 ‘저는 심각한 투쟁을 겪은 후 비로소 지적이고 도덕적인 자율에 도달했습니다. 아버지의 권위는 인격적이 며 지성적인 권위였는데, 교회 안에서 아버지의 직위 때문에 저는 아버지의 권위를 계시의 종교 권위와 동일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아버지의 권위는 자율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종교적으로 대드는 행위로 간주했으며, 권위를 비판할 때 저절로 죄책감이 생겨나게 했습니다. 하나의 금기를 깨부숨으로써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으며, 자율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죄책감이 수반된다는 인류의 해묵은 경험담은 제 자신의 근본 체험이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신학적, 윤리적, 정치적 비판은 내적으로 장애물을 만났는데, 이 장애물은 오랜 투쟁을 겪은 후에만 극복되었습니다. _“타율과 자율 사이에서” 중에서 제 삶과 사상을 경계상황 개념으로 가장 분명히 설명할 수 있는 지점은 신학과 철학 사이의 경계선입니다. 중학교 막바지 무렵 제 꿈은 철학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한가한 시간 내내 우연히 제 수중에 들어온 철학 서적을 읽었습니다. 한 시골목사의 먼지투성이 책장구석에서 슈베글러의 『역사철학』(Geschichte der Philosophie)을 발견했고, 베를린 거리의 책을 잔뜩 실은 수레 꼭대기에서 피히테의 『학문론』(Wissenschaftslehre)을 구했습니다. 소년처럼 흥분해서 그 당시만 해도 제게 거금이었던 50센트를 치르고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The Critique of Pure Reason)을 책방에서 샀습니다. 이런 책들, 특히 피히테의 책 덕분에 저는 독일철학의 가장 난해한 면모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 제가 신약성서에 관한 역사적 식견을 얻게 된 것은 주로 슈바이처의 『역사적 예수 탐구』(The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와 불트만의 『공관복음 전승사』(The Synoptic Tradition) 덕분이었습니다. 에른스트 트뢸취의 저술을 읽고 나서 중재신학과 이 중재신학의 변증론에 일말의 관심이라도 가졌던 잔재를 말끔히 씻어냈고, 마침내 교회사와 역사비평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 신학과 철학 사이의 경계선 위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양자의 논리적 관계성에 대한 명징한 개념부터 모색해야만 합니다. 제 『학문체계』가 이 작업을 했습니다. 이 책의 궁극적 관심은 다음과 같은 질문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신학이 과학성(Wissenschaft)이라는 의미에서 하나의 학문이 될 수 있는가? 어떻게 신학의 여러 분과목들이 다른 학문과 연결되는가? 다른 학문과 구별되는 신학 특유의 방법은 무엇인가?
_“신학과 철학 사이에서” 중에서

종교와 문화 사이의 관계는 종교와 문화 경계 양측면 모두의 관점에서 정의되어야만 합니다. 종교는 절대적인 것을 포기할 수 없기에 신(神)개념에 나타난 보편적 주장 역시 포기할 수 없습니다. 종교는 문화 내부의 한 특수영역이 될 수 없으며, 문화 옆에서 하나의 부수적(附隨的) 자리를 차지할 수도 없습니다. 자유주의는 이 둘 중에 어느 한 가지 방식으로 종교를 해석해 왔던 경향이 있습니다. 둘 중에 어떤 해석을 하든지 간에 종교는 불필요한 것이 되고, 종교 없이도 문화구조가 완전하고 자기충족적인 것이 되기에 종교는 결국 소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문화가 종교를 좌지우지할 권리를 갖기 때문에 문화 자신의 자율성이 ―결국 문화 자체를 포기하지 않는 한― 포기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진리입니다. 문화는 형식을 결정지어 야만 하는데, 이 문화형식으로 종교의 ‘절대성’ 내용을 비롯한 모든 내용이 표현됩니다. 문화는 종교적 절대자의 이름으로 진리와 정의가 희생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종교가 문화의 내용이듯이, 문화는 종교의 형식입니다. 양자의 차이점을 굳이 한 가지만 지적한다면 종교는 내용지향적이라는 사실에 있는데, 종교의 내용지향성이야말로 의미의 무조건적(무제약적) 원천이자 심연입니다. 그리고 문화형식은 이 종교내용의 상징구실을 합니다. 문화는 형식지향적인데, 조건적(제약적) 의미를 표현합니다. 무조건적 의미를 표현하는 종교 내용은 문화가 부여하는 자율형식이라는 매체로 간접적으로만 간파될 수 있습니다. 인간실존이 완전하고 자율적 형식체계(틀)로 자신의 유한성 안에서 무한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파악되는 곳에서 문화는 극치에 이릅니다.
_“종교와 문화 사이에서” 중에서

인간 행위에는 하나의 경계가 남아 있는데, 이 경계는 더는 두 가지 가능성 사이의 경계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가능성을 초월하는 영원성으로 말미암아 일체의 유한한 것에 부과된 한계로 남아있습니다. 영원이 현존할 때 우리 존재의 중심조차도 하나의 한계에 불과하며, 우리가 이룬 최고 수준의 성취조차도 단편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_“회고: 경계와 한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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